여의도 롯데캐슬에서 전업투자자로 하루하루 수익에 노심초사하던 서른살 초반의 청년이 5년이 지난 지금은 여의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신생 헤지펀드의 대표가 됐다. 올해 1월 펀드 운용을 시작해 6개월간 15%의 수익을 올린 빌리언폴드자산운용의 안형진(36)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펀드 설립 및 운용기간이 아직 짧은 만큼 그 성과의 지속가능성은 지켜봐야할 일이겠지만,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매니저들이 운용하는 굴지의 자산운용사 펀드들이 올해 줄줄이 마이너스의 쪽박을 찬 시장에서 보란 듯이 두자리 수익을 달성한 것은 단순한 행운이나 일회성은 아닐수 있다. 답답한 글로벌 증시 장세 속 성공 투자를 꿈꾼다면, 여의도의 이단아 안 대표의 시장 전망에 귀를 기울여보자.
흔해 빠진 주식 롱숏으로 4년간 300% 수익…비결은?
안 대표는 빌리언폴드자산운용 이전에 타임폴리오자산운용에서 4년간 297%라는 기록적인 수익률을 거뒀다. 그가 떠나자 타임폴리오는 펀드 오브 펀드 형식으로 빌리언폴드자산운용에 300억 원 가량을 투자했으며, 삼성증권과 미래에셋대우 등 국내 주요 증권사를 통한 개인투자자 및 법인들의 자금도 3000억 원 이상 빌리언폴드로 몰렸다. 2009년 한화증권 주식 PB로 시작해 근 10년간을 주식쟁이로 살아온 그의 운용이 시장 신뢰를 얻은 것인데, 비결은 다름 아닌 ‘주식 롱숏’이다. 흔해 빠진 주식 롱숏이지만, 그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
안 대표에 따르면 빌리언폴드는 총 4개의 헤지펀드로 약 40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 중인데, 일평균 500개에 달하는 주식을 포트에 담아 관리하고 있다. 주식이 많은 만큼 턴오버도 많을 수 밖에 없다. 주식쟁이 전업투자자가 이끄는 펀드답게 국내 증시 전반을 샅샅이 뒤져보고 투자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주식 롱숏을 하는 대부분의 헤지펀드들이 결국 매수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안 대표는 ‘롱숏의 비중을 최대한 1:1로 맞춰서’ 가져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선진국 증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기업의 시가총액 대비 거래량이 적은 국내 증시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기에는 “불편함이 많다”는 안 대표는, “시장에서 가장 센 종목 즉 시세가 강한 종목을 많이 담고 있다”고 전했다. 포트에 담는 종목은 많이 바뀌지만 올 상반기에는 2차 전지 및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관련 종목을 매수했다고 한다.
하반기에는 어떤 섹터나 종목을 주목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서 계속 바꾸고, 국내 시장은 바닥을 보면서 좋은 종목을 추리고 있어서 아직 특정 부문을 언급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중 몇몇의 부진이 국내 관련 기술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편안함에 물든 시장, 공포를 잊은 듯
코스피지수가 이번주 연저점마저 갈아치우고 연초대비 9% 가량 빠진 상황인 만큼 저점매수에 나설 때라는 진단이 많지만, 안 대표는 하반기 증시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편하게 매수로 대응하기에는 불편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증시의 경우 “이미 많이 내려와 있어서 추가 하락에 베팅하기 어렵고, 저점매수를 준비해야할 상황이 분명히 맞다”면서도 글로벌 시장 위험 등을 감안해 주식 비중을 한번에 확 늘려 상방으로 베팅할 상황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특히 페이스북과 넷플릭스 주가가 실적 부진으로 급락한데 이어, 텐센트가 최소 10년래 첫 이익 감소로 급락세를 이어받는 등 기술주 부진에 대해 안 대표는 “버블은 아니겠지만 이제 쉴때가 되지 않았는가”하는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며 미국 증시가 어찌될지 모를 위험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증시가 10년간 너무 많이 올라왔고, 특히 최근 2~3년은 너무 편한 상승장이었어서 주식 시장참여자들이 공포를 잊은 듯 한데, 이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살얼음 위를 걷듯이 천천히 가는 태도가 필요한 듯 하다”고 덧붙였다. 기술주 부진의 여파는 제한적일 것이며, 미국 증시의 상승랠리는 계속될 수 있다는 일각의 진단과는 사뭇 다른 견해다.
결국 백조가 된 미운오리새끼의 집합
안 대표는 한화증권 입사 전에도 건국대학교 재학시절 3년 정도 전업에 가까운 투자를 했었다고 한다. 새로운 동기 부여를 위해 한화증권을 떠나서도 업계의 다른 기관으로 이직을 택하지 않고 다시 전업투자를 택했다. 그런데 빌리언폴드에는 7명의 펀드 매니저 중 안 대표를 제외하고도 전업투자자 출신 매니저가 2명 더 있다. 그중 주식운용팀장의 경우 전업 투자 경험이 근 10년에 달한다고 한다. 안 대표는 “사실 여의도 금융 환경에서 전업투자자가 각광받고 인정받는 분위기는 아니며, 여전히 이단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업투자자라면 누구나 투자로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큰 손실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상황이라는 장점이 있다며, 전업투자자로서의 성공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동료 매니저들의 운용스타일 및 각기 다른 전략을 전적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7명의 펀드 매니저들이 펀더멘털, 모멘텀 및 이벤트 추종, 퀀트 등 다양한 자신만의 주 전략을 구사하며 독립적으로 펀드를 운용한다는 것.
글로벌 헤지펀드 리서치기관인 유레카헤지 집계 기준 올해 글로벌 롱숏 헤지펀드의 수익은 1.1% , 신흥시장 롱숏 헤지펀드 수익은 -2% 수준이며, 한국의 주식 롱숏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같은 기간 -9.5%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김경진, 김희진 기자 (송고 2018/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