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리퍼블릭 구제
미국 정부의 주도하에 월가 대형은행들이 위기설에 휩싸인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 약 300억 달러를 예치하기로 합의했다. JP모간체이스,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가 각각 50억 달러씩 예금을 투입하고,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는 25억 달러씩 내놓을 예정이다. PNC 파이낸셜서비스그룹, 뱅크오브뉴욕멜론, 트루이스트 파이낸셜, US 뱅코프. 스테이트스트리트 등은 각자 10억 달러씩 내주기로 했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이번 조치는 퍼스트 리퍼블릭은 물론 모든 규모의 은행에 대한 신뢰를 반영한다”고 성명서는 밝혔다.
SVB 실패에 놀란 투자자들이 뱅크런 위험이 있는 중소 은행에 대해 패닉 투매에 나서면서 퍼스트 리퍼블릭 주가는 지난주 수요일 종가 115달러에서 이번주초 17달러로 급추락했다. 지원설이 돌며 목요일엔 한때 28% 넘게 반등해 40달러선을 회복하기도 했다. 퍼스트 리퍼블릭은 프라이빗 뱅킹에 특화해 약 271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은행으로 스타트업과 벤처회사를 주로 상대해 온 SVB와 다르게 비즈니스 예금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강조해왔다. 한편 옐런 미 재무장관은 목요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미국 은행 시스템이 여전히 튼튼하다고 강조했다.
CS 낙관론 시들…UBS 강제합병 반대
스위스 당국이 유동성 지원을 약속하며 위기 차단에 나섰지만 현지시간 목요일 크레디트스위스(CS)의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채무불이행 위험도를 나타내는 CDS가 다시 치솟아 아직 안심하기엔 이른 모습이다. 스위스 중앙은행(SNB)이 최대 500억 스위스프랑의 대출 지원을 약속하면서 CS 주가가 장초반 40% 넘게 반등하는 등 불길이 잡히는 듯 했지만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이 일부 EU 은행에 대해 통화정책 긴축에 취약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그럼에도 ECB가 50bp ‘빅스텝’ 인상을 밀어부치면서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주가는 반등폭을 절반 이상 내준채 19% 상승으로 마감했다.
투자자들이 CS의 장기 전망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면서 CS 달러 채권은 목요일 글로벌 크레딧 시장에서 다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026년 만기 이표금리 4.55%인 달러표시 채권은 액면가 1달러당 15.5센트 하락해 63센트를 기록, 약 1800bp 스프레드에 거래되며 더 깊은 부실 수준으로 추락했다. 2029년 3월 만기 유로화 표시 선순위 무담보 채권 역시 반등을 시도했으나 결국 액면가 1유로당 69센트로 약 2센트 하락했다. 1년물 CDS의 경우 CMAQ에 따르면 런던시간으로 오전만해도 2500bp 아래로 떨어졌으나 오후 들어 3409bp로 다시 튀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간 애널리스트들은 현 상황 유지는 더이상 옵션이 아니라며 CS의 위기가 결국 UBS그룹의 인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스위스 정부 주도의 합병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UBS와 CS는 강제 합병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BS는 자산관리 중심의 독자적 전략에 집중하길 원하며 CS 관련 리스크를 떠안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중앙은행으로부터 유동성 백스톱을 얻어낸 CS의 경우 시간을 벌어 턴어라운드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ECB 일단 물가안정 선택…선제적 안내 포기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달 예고한대로 50bp 인상을 단행해 단기수신금리를 3%로 올렸다. CS 불안에 시장 일각에선 25bp 인상을 내다봤지만, 스위스 당국이 유동성 지원을 약속하며 진화에 나서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해 긴축 속도를 늦춰선 안된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다음 행보를 묻는 질문에 향후 금리 경로를 “현 시점에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다만 ECB의 기본 시나리오대로 갈 경우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성명서 역시 선제적 안내 문구를 삭제했다. 라가르드는 대다수의 ECB 위원들이 이번 결정을 지지했다며, 인플레이션이 “너무 오랫동안 너무 높게” 머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ECB는 인플레이션과 싸워 2% 목표로 되돌리겠다는 결심이 단호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시장 불안이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을 예고하는지 묻자 라가르드는 “은행권이 2008년에 비해 훨씬 더 강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한편 루이스 데 귄도스 ECB 부총재가 지난 화요일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일부 EU 은행들이 금리 상승으로 인해 금용 경색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그는 일부 은행들이 비즈니스 모델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신뢰 부족이 전이를 촉발할 수 있어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금융 안정이 유지된다면 ECB가 여름까지 25bp씩 금리를 올리겠지만 은행 긴장이 오래 갈 경우 긴축 행진이 갑자기 멈춰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연준 다음주 25bp 인상 전망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은행 위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다음주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파월 연준의장이 지난주 초 필요시 긴축 속도를 높일 수도 있다고 시사했지만 이후 미국 금융기관 3곳이 문을 닫으면서 50bp 인상 기대는 크게 줄었다. 몇명은 동결을 예상했고 노무라는 인하를 내다봤다. 블룸버그가 3월 10일부터 15일까지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SVB 실패를 반영한 견해를 내놓았으나 약 3분의 2는 현지시간 수요일 CS를 둘러싼 신뢰 위기가 갑자기 휘몰아치기 전에 연준 전망을 제공했다. 설문조사 결과 연준은 3월 21일-22일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올리고 이후 두 번 연달아 25bp씩 추가 인상을 단행해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5.25%-5.5%로 끌어오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이 제시할 분기 점도표상 기준금리 전망치 중앙값은 올해말 5.4%로 작년 12월 예상했던 5.1%에서 높아질 전망이다. 이 경우 최종금리를 5월 4.9%로 보고 연내 거의 100bp 인하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매파적 서프라이즈가 될 수 있다. Hugh Johnson Economics의 Hugh Johnson 회장은 “SVB 위기가 통화정책을 변경시킬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하면서, 이번 위기가 전이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시스템 리스크가 매우 낮다는 견해를 밝혔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번 FOMC에서 25bp 인상과 동결 가능성이 막상막하로 보이지만 크레딧 스프레드가 아직 심각한 경제 둔화를 시사할 정도는 아닌데다 현재 은행 위기가 실물경제에 보다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재로선 리스크 요인일 뿐 확실치 않기 때문에 25bp 인상이 보다 유력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중국 채권시장 정상화
중국 규제당국이 일부 중개업체에 금요일 오전 채권 가격 정보 피드를 재개할 수 있다고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수요일 널리 사용되는 채권 가격 플랫폼의 정보가 갑작스럽게 정지되면서, 21조 달러 규모의 중국 채권시장 일부에서 거래량이 급감함 바 있다. 이후 아직까지 호가 정보의 중단에 대한 공식적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 소식통에 따르면 규제당국은 목요일 자금 중개업체 6개사와 회동을 가졌으며, 별도로 시장참가자들로부터 피드백을 취합했다. 중국 당국은 Tullett Prebon와 NEX International의 합작사 등 여러 자금 중개업체에게 데이터 보안상의 우려를 이유로 외부에 제공하는 채권 정보 피드 서비스를 정지하도록 지시했다고 앞서 로이터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