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PI 충격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월비 0.8%를 기록해 시장 예상치 0.2%를 크게 웃돌았다. 2009년래 최고치로 경제 리오프닝 확대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더하며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는 모습이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 역시 0.9%로 예상치 0.3%를 상회했다. 헤드라인 CPI는 작년 팬데믹에 따른 기저 효과로 인해 전년동월대비 4.2% 상승했으며, 근원 CPI는 3.0% 올랐다. 전월비 인플레이션 중 약 60%가 중고차와 렌트카, 숙박, 항공료 등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품목에 집중됐다. 연준 위원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은 인플레이션 상승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말하지만, 수조 달러의 경기부양책이 투입된 데다가 최근 원자재 상품 가격이 급등하고 인건비 상승 조짐마저 나타나기 시작해 보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백악관 내부에서는 올해 말까지 “일시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위기다. 재러드 번스타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은 미국인들이 다시 여행과 여가활동을 즐기면서 기업들이 가격을 보다 정상화할 수 있다며, 추가적인 혼란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의 여유
클라리다 연준부의장은 미국 인플레이션의 상승이 주로 일시적인 요인 때문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현지시간 수요일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연설에서 밝혔다. “전년비 인플레이션 수치가 최근 상승했으며 앞으로 다소 더 오른 뒤 올해 말에 둔화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2022년과 2023년에 우리의 장기 목표인 2%로 돌아오거나 약간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작년 경제가 사실상 셧다운된 데 따른 기저효과 때문에 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연준이 대규모 통화부양책을 축소하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음을 시사했다. “경제는 우리의 목표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4월 CPI 수치에 놀랐다며, 억눌린 수요가 분출됨에 따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총재는 적어도 9월까지 상당한 변동성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이후 공급망 문제와 원자재 가격 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의 우려
바클레이즈의 Michael Gapen은 일시적인 팬데믹 영향이 CPI 서프라이즈에 일조했지만 근원 인플레이션의 상승은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리오프닝 효과에 더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리스크는 상방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4월 CPI 수치가 충격적 수준이지만 인플레이션이 지나갈 것이란 주장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공급 부족과 재정부양책 영향, 기저효과 등을 감안할 때 CPI는 여름까지도 뜨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First Pacific Advisors의 Thomas Atteberry는 10년물 BEI 상승이 5년물에 비해 제한된데다 미국채 일드커브가 더 가팔라지지 않았다며, 아직 일부 투자자들은 신중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는 수급 불균형 현상은 1년 정도면 사라질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Bleakley Advisory Group의 Peter Boockvar는 인플레이션이 광범위하고 정부 통계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이제 임금마저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과 연준은 일시적이길 희망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연준 정책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겁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바이든 지출 계획 차질?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면서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적극 추진 중인 약 4조 달러의 인프라 및 복지 지출 계획이 정치적 위협에 직면했다.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은 물가 상승과 예상보다 느린 고용 회복세는 물론 심지어 콜로니얼 파이프 라인의 해킹 사태로 인한 연료 부족 우려를 기회로 삼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와 비교하며 강하게 비난했다. 4월 CPI 지표가 발표되기도 전에 존 툰 공화당 상원의원은 “경제에 너무 많은 돈이 풀려 수요가 높아 공급을 앞서고 있어 물가 상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며, “우리는 보다 신중하고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CPI 지표는 민주당내에서도 불안감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백악관 고문들은 공화당의 우려가 지나치다며, 올해 인플레이션의 상승은 12개월 넘게 이어진 팬데믹으로부터 경제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으로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란 입장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Austan Goolsbee 교수는 연준의 정책과 재정부양책 등으로 오랫동안 인플레이션 경고가 나왔지만 심지어 실업률이 3.5%로 역대 최저일 때조차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공화당이 인플레이션 자체 보다는 바이든의 정책 어젠다를 막기 위해 시비를 거는 듯 보인다”고 진단했다.
유로존 낙관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8000억 유로 규모의 EU 공동 회복기금과 백신 접종 진전, 견조한 글로벌 경기 반등 등을 반영해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8%에서 4.3%로 상향 조정했다. 내년의 경우 더 많은 역내 공동 재정부양책 자금이 친환경과 디지털 경제 관련 프로젝트에 투입됨에 따라 4.4% 가량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4%로 올렸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은 다음달 경제 전망을 업데이트한다. 파올로 젠틸로니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팬데믹 발발 이래 처음으로 낙관론이 불확실성을 앞서는 모습”이라며, “EU 회복기금의 구성이나 강도, 기간 등이 팬데믹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이제 경제의 운명은 주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진단했다. EU 집행위는 각 국가의 전례없는 재정 부양 노력으로 인해 작년 유로존의 공공부채가 GDP 대비 100%에 달했다고 지적하고, 해당 비율이 올해 102%, 내년 10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탈리아의 경우 올해 160%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