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이후 담보와 유동성 관리의 성격은 크게 변했다. 한때는 단순한 운영 프로세스였으나, 이제는 거래당사자들 간에 담보를 교환하면서 유동성 위험의 가능성에 유의해야 하는 리스크 기반 프로세스가 되었다.
“규제 변화로 인해 더 많은 기업이 담보를 예치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의 셀사이드 솔루션 글로벌 총괄인 필 맥케이브(Phil McCabe)의 말이다. “각국 규제 기관은 이제 ‘고품질’이라고 간주되는, 즉 예치 가능한 종류의 담보 기준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담보 관리는 이제 담보 포지션에 대한 신중한 밸류에이션과 평가가 수반되는 최적화 프로세스에 훨씬 가깝게 변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 규제기관들은 파생상품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유럽 시장 인프라 규제(EMIR)는 미청산 파생상품에 대한 증거금 요건을 도입했다. 적용 대상인 거래 당사자들은 중앙 청산기관을 통해 청산되지 않는 장외 파생상품 계약에 대해 증거금을 교환해야만 한다.
요구되는 증거금은 두 종류인데, 변동 증거금은 거래 체결 시점의 익스포저를 대비하며 시가평가(mark-to-market) 포지션을 이용하여 계산된다. 개시 증거금은 마지막 변동 증거금 거래 시점과 거래상대방의 결제불이행의 공식 인정 시점 간의 시차에 대한 잠재적 미래 익스포저를 대비한다.
증거금 제도는 2016-17년경 전세계 수천 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도입되었으며, 2020년까지 점진적으로 확대 적용된다. 결국 미청산 파생상품 거래잔액이 80억 달러 이상인 모든 기업은 언젠가는 복잡한 증거금 계산을 수행하고 그로 인한 유동성 리스크에 유념해야 한다.
최근 런던에서 개최된 ‘리스크의 날’ 행사에서 블룸버그가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엄격해진 개시 및 변동 증거금 요건을 준수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직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조사에 응한 55명의 리스크 전문가 중 가장 많았던 응답은 “일상적 운영 문제”였다. 그 외에 우려되는 문제로는 프론트 · 미들 · 백오피스 오퍼레이션의 파편화, 고품질 데이터의 적시 확보의 어려움, 계약의 재작성과 재협상 등이 꼽혔다. 가장 우려되지 않는 항목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술의 업데이트 비용 문제였다.
장외 파생상품의 변동 증거금 규정 도입이 장외파생상품 자산군에 대한 의견에 영향을 주었는지 묻는 질문에, 바이사이드 리스크 전문가 중 거의 절반이 증거금 도입으로 인해 해당 자산군의 매력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36%는 증거금 규정이 해당 자산군에 대한 관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증거금 규칙으로 장외 파생상품 자산군의 매력도가 높아졌다고 답한 전문가는 수 명에 불과했다.
증거금 규정이 셀사이드 기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의견이 갈렸다. 조사 대상자 중 1/4은 증거금 규정으로 인해 장외 파생상품이 셀사이드 기업에게 보다 매력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았고, 나머지는 아무런 영향이 없거나 매력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반반이었다.
ISDA의 SIMM: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국제 스왑 및 파생상품 협회(ISDA)는 미청산 파생상품 거래의 개시 증거금을 계산하는 업계 표준 방법론인 표준 개시 증거금 모형(SIMM)을 발표했다. SIMM은 개시 증거금 계산을 위한 투명하고 유연한 공용 모형으로, 개별 기업이 자체 모형에 기반하여 개시증거금을 계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분쟁의 소지를 덜기 위해 개발되었다.
SIMM을 구현하는 것은 대체로 어렵지 않지만, 리스크 관리자들은 세부적인 부분에 어려움이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회사는 SIMM을 위한 좋은 인프라를 갖추어야 하고, 필요한 그릭스 값을 계산하기 위해 상향조정 후 재평가(bump-and-reprice)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블룸버그의 장외 파생상품 글로벌 총괄인 해리 립먼(Harry Lipman)의 말이다. “로켓 공학처럼 복잡하지는 않지만, SIMM을 위한 인프라를 배치할 때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모형의 설명 문서를 읽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상세한 내용을 전부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영국의 한 주요 은행의 리스크 관리자도 이에 동의했다. “SIMM 모형은 단순하지만, 이 모형에 필요한 인풋을 넣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다양한 테너, 통화, 커브를 상향 조정하는 방식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은행마다 이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든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될 것입니다.”
유동성 부족 환경에서 담보의 최적화
향후 몇 년간 개시 증거금 규제를 받는 거래 상대방이 늘어남에 따라, 대사(reconciliation)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과 바이사이드 고객 간의 이색적이고 복잡한 거래가 대량으로 규제 대상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규제에 편입되는 시점보다 한참 전부터 회사 인프라가 SIMM을 통한 개시 증거금 규제 준수를 지원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모형 설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맥케이브 총괄은 규제 당국이 정한 대로 개시 증거금을 일일 정산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담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업은 담보 예치가 유동성에 부담을 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최대한 억제하려고만 합니다.” 맥케이브의 말이다. “하지만 최적화만 된다면 담보 관리는 돈을 절약할 뿐 아니라 벌어줄 수도 있음을 점차 많은 기업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담보 최적화는 기본적으로 어떤 담보가 가용한지, 적격인지, 그 이상인지 판단하는 일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유동성이 제약된 환경에서, 담보를 예치할 때 기업은 그 담보가 달리 더 유용하거나 가치 있게 쓸 수 있지는 않은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 전망형(forward-looking) 담보 목록을 구비하고 있으면 어떤 담보가 가장 예치하기 적절한지 정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유동성 리스크를 완화해 준다. 전망형 목록은 회사가 합리적 방식으로 담보의 순위를 정할 수 있게 한다. 회사가 자신의 미래 유동성 포지션과 현재의 가용 담보를 알고 있으면, 유동성 최적화에 매우 좋은 입지를 갖춘 것이기 때문이다.